[성미가엘종합사회복지관] 홍예문 속으로 >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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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예문 과연 어떤 전설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우리의 기사는 시작되었다.
홍예문은 예전부터 많은 전설이 존재했다. 그 전설 중 하나는 홍예문을 지날 때 누군가 불러도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뒤돌아보면 귀신과 눈이 마주친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을 가진 홍예문에는 깊은 역사가 존재한다. 우리는 그 역사에 대해 더 알아보려고 한다.
등굣길에 항상 지나는 홍예문, 매일같이 지나는 길이지만 그곳 역사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보고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다. 이번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우리 동네 역사 속 문화재를 조사하는 활동이 있었는데 그때 홍예문을 조사하게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홍예문은 많은 역사가 담겨있는 곳이다.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신포 시장에 있는 성광 떡집의 사장이자, 역사에 해박한 시인 이종복 위원장을 만나 인터뷰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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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로 50에 위치한 홍예문은 1905년에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강제노동을 시켜 만들어진 문이다. 그 당시에는 홍예문이 ‘혈문’으로 불렸다. ‘혈문’이란 이름은 일본사람들이 지은 것으로 한자 구멍 혈, 문 문을 사용한 말이다. 홍예문은 바위산이다 보니까 구멍을 뚫으려면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사람들 중 20~3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항상 억지로 하는 것은 모든 일에 탈이 난다.
수많은 목숨이 홍예문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홍예문에 대한 괴담과 설화들이 굉장히 많이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도로로 사용되는 중이며 많은 사람이 매일 홍예문을 지나다닌다.

예전에 홍예문의 높은 꼭대기에는 ‘한 번만 더 생각하세요’, ‘잠깐’이라는 팻말이 있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헛되이 낭비했다고 한다.

‘홍예문을 지날 때 뒤를 돌아보면 아이의 귀신과 눈을 마주친다’라는 전설은 홍예문 주위가 산이었기 때문에 홍예문을 지을 때 흙이 자꾸 무너져 내려서 흙이 무너지면서 생긴 낭떠러지에 홍예문을 짓던 50명의 우리나라 인부가 죽었고, 제사를 지내려 아이를 매장했다고 하는 소문으로 인해 파생된 또 다른 괴담이다. 아마 이 50명의 인부의 희생이 어느 정도 반영 된 괴담이 아닐까 싶다. 아마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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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다. 심지어 무생물로 느껴지는 사물도 의미가 있다. 이 세상에는 의미가 없는 것이 없다. 그래서 그 의미를 잘 보존하고 의미를 부여했을 때 그 지역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게 된다. 중구 주민들 또한 우리 지역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지역이 되면 좋겠다.

10대로서 이 지역의 주민으로써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마지막 질문의 답변으로 학업에 지친 우리를 위로하는 또는 동기부여가 되는 말이였다. 앞으로 우리는 의미가 있는 것에 대해 더욱 가치있게 여기고 우리 지역의 역사를 더 자세히 알고 자랑스러워하는 주민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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