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의회] 대전 근교 여행 : 부여 편 >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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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을 좋아한다. 가까운 미래에 다녀 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일까.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은 공간 속에 과거와 현재, 미래를 억지로나마 잡아 두려는 것 같다. 이곳 백제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부여가 그랬다.

높디높은 가을하늘 아래 바람에 흔들리는 꽃과 나무, 햇볕을 받은 돌들이 반짝반짝 숨 쉬고 있다. 부여로 가는 길에 만난 코스모스가 춤을 추며 ‘어서 오세요’라고 손짓한다. 들숨과 날숨으로 깊게 들이마신 공기의 상쾌함이 극에 달한 가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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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가 말하는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라는 표현에서 이곳 부여가 떠오른다. 백제는 기원전 18년부터 660년까지 약 700여 년간 존속한 한반도의 한나라다. 풍요로운 영화를 누렸던 백제의 흥망성쇠를 절정에서 툭 하고 떨어지는 동백꽃에 비유했다. 찬란했던 백제역사유적 지구에 호기심이 더욱 커진다.

실제로 백제 문화유산은 2015년 7월 4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5~7C 고대 동아시아 국가의 교류와 건축기술의 발전 및 불교의 확산을 보여 주는 유적들이다. 부소산성과 관북리 유적, 능산리 고분군, 나성, 정림사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부여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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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좋은 날 찾은 부여. 볕을 쬔 덕분인지 정림사지 석탑 겉에 맴도는 빛이 영롱하다. 오랜 시간 석탑에 깃든 영혼이 과거 백제를 지켜 냈듯 지금의 부여를 지켜 주고 있다. 시간의 끈이 연결되어 미래 부여를 번창하게 해 줄 것만 같은 묘한 기분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담장 너머 드넓은 벌판에 정림사지 5층 석탑이 도도하게 서있다. 정림사지는 사비도성의 중앙에 위치하였던 절터로, 도심에 세워진 절로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사례 중 하나이다. 목탑의 한계를 극복한 높이 8.3m의 석탑이 남아 있으며, 발굴조사 결과 금당지, 강당지, 승방지 등이 확인되어 불(佛)‧법(法)‧승(僧) 불교의 3보를 모두 구비한 백제 고유의 사찰 건축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석탑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시대(百濟時代)에 세워진 귀중한 탑으로, 세련되고 격조 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며, 백제 석탑이 목탑의 번안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보여 주고 있는 백제탑 형식 중 전형적인 석탑이자 석탑의 시조(始祖)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석탑은 각 부의 양식수법이 특이하고 본격적인 석탑으로 정착하고 있는 전이적인 규범을 보여 주고 있어 한국 석탑의 계보를 정립시키는 데 귀중한 존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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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으로 가는 길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지붕을 이루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시간을 멈춘 듯 나무와 돌들이 어제 있던 그 자리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작은 생명체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그들의 생명을 보존해가고 있다.

“툭~툭툭~두두둑” 깊은 숲에서 낯선 소리가 들린다.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진다. 가을 옷을 입은 도토리가 여럿 떨어진다. 바람 한번 불면 도토리 두 알이 함께 ‘투두둑’ 하강한다. 다람쥐가 가장 좋아할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 아이와 함께 왔더라면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그대로 들려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밀려든다. 어릴 적 도토리를 주워서 묵을 만들어 주셨던 어머니 맛도 생각나 뱃속에서 요동친다.

20여 분을 걸어 오르니 아름다운 소나무 숲과 백제의 향기가 어우러진 낙화암과 백화정이 시야를 사로잡았다. 이 멋진 풍경에 숨이 멎는다. 소나무 사이사이라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살갗을 간지럽힌다. 앓았던 피부병도 낳을 것 같다. 백화정에 올라 백마강을 내려다보니 그 옛날 나루터를 재현해 놓았다. 곧 있을 부여 백제문화제 준비에 한창이다. 이 순간 행복이 찾아왔다.

햇볕을 받은 백마강 물비늘이 바쁘게 움직인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과 삼천궁녀가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삼국유사에 인용된 전설에 따르면 수많은 궁녀들이 슬피울면서 흉악한 적군에게 죽는 것보다 깨끗하게 죽는 것이 옳다하여 대왕포(大王浦) 물가 높은 바위 위에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사비수 깊은 물에 몸을 던졌고, 이러한 일로 인하여 이 바위를 낙화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슬프고 애달픈 역사의 한장면이 아닐 수 없지만,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백화정에서 강을 따라 5분 정도 내려오니 풍광이 장관인 고란사가 나타난다. 소풍 나온 아이들이 무리지어 종을 치고 소원을 빌고 약수를 마신다. 평안해 보이는 이들 앞에서 가을바람을 맞으니 이 또한 행복이었다.

바람 따라 걸었던 부여여행 일정을 마치고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행복에 관한 글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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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행이든, 시이불견 청이불견이라 했다. 직접 보고 듣고 겪었을 때 느껴지는 감정들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에 집중할 때 우리는 그 순간 행복해질 것이다. 이곳 부여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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