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입원을 하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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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과 같은 오전, 출근하여 진료 준비를 하는데 밖에서 어떤 남자분이 큰 소리로 '우리 식구 좀 살려주세요. 저 진료 좀 먼저 보게 해주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며 얘기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곧이어 중년 남자분이 들어와 다급하게 말씀합니다.

"선생님, 저희 식구 좀 살려주세요. 집에 누워있는데 얼굴이 하얗고, 경기를 해요."

"보호자분, 그 정도면 응급실로 가셔야 할 것 같은데요."

"선생님, 식구가 병원에 안 간다고 하니 그러지요. 제발 와서 환자 좀 봐주세요."

그래서 예정에 없던 왕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몰라 약물과 검사를 위한 준비를 하여 왕진 가방을 들고 나섰고, 출근 중인 가정간호사님께 바로 와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환자는 40대 여자분으로 작년 말, 대장암 진단받고 올해 초 대학병원에서 수술하기로 했는데 당시 코로나19가 갑자기 확산되었고, 경제적인 문제, 개인 사정 등으로 병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방치된 상황이었습니다. 진찰을 해보니 혈압도 떨어져 있고, 결막이 창백하여 빈혈이 심해 보입니다. 여쭤보니 혈변이 계속 나온다고 합니다.

환자에게 입원을 권유하니 몸을 움직이지 못해서 입원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환자분, 몸을 못 움직이니까 입원을 하셔야죠."

"선생님, 저는 스스로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이런 것들 할 수 있을 때 입원하고 싶어요."

"환자분, 이 상태로 누워만 계셔서는 점점 나빠지기만 하지 좋아지지 않습니다. 대변으로 자꾸 혈액이 빠져나가는데 누워서 쉰다고 회복되지 않아요. 가서 수혈을 받고 치료를 해야 합니다."

"간병을 해줄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입원을 하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결국 수술할 예정이던 대학병원으로 입원하셔야 하는데 경제적인 부담, 간병 문제로 망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선 검사와 수액 처치를 하고 병원으로 돌아와 대학병원의 진료협력센터를 통해 바로 다음 날 외과 외래를 예약했습니다. 이분은 급여 환자가 아니고 건강보험 대상자입니다. 그래서 본인부담금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끼는 상황이었습니다. 주민센터에 경제적 지원을 위한 노력을 부탁드렸더니 기초생활 수급자 진행을 위한 절차와 의료비 정부 지원을 동시에 진행하고, 대학병원의 의료사회사업실로 전화도 하시겠다고 합니다. 따로 살고 있던 따님에게 환자의 상태를 알리고 간병 문제를 상의하였고, 다니시던 교회에도 도움을 요청드렸습니다.

환자는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수혈 후 입원하였고 대장암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수술 경과도 좋고, 대학병원의 의료사회사업실과 지역주민센터의 도움으로 진료비도 크게 경감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 다시 진료실에서 만나 뵈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민들레 덕분에 살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의학적으로 입원을 해서 적절한 치료를 받으셔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확실한데, 돈이 없고 간병할 사람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의사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솔직히 얼마 전까지의 저라면 이렇게 얘기했을 겁니다.

"그래도 꼭 입원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리고는 끝이었을 상황입니다.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한계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번에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간병 문제와 진료비 문제는 저희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그러니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코 제가 잘나서가 아니고, 저에게 든든한 배후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민들레의료사협이라는 조직과 저와 같이 발로 뛰어주는 지역사회의료센터의 팀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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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민들레 직원들.


왕진이나 방문 진료를 나가서 집 밖으로 나오기도 힘들 정도로 아픈 분들을 만나면 아픔의 이유가 참 다양하다는 것을 봅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하지요.

"행복한 가정은 모습이 다들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이것은 건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건강한 분들의 모습은 비슷한데 건강하지 못한 분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아픕니다. 실제로 질병 때문에 아프기도 하고, 경제적인 상황, 몸의 기능 이상, 관계의 문제, 심리적인 문제, 외로움 때문에 아프기도 합니다. 의사로서 저는 질병과 신체의 문제를 조금 다룰 뿐이지요.

그렇지만 다른 문제들로 생긴 건강 문제도 통합적으로 다루고자 저희 팀들과 노력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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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민들레 지역사회의료센터 팀원들.


이번 왕진은 응급상황이었지만, 민들레 의료사협과 팀원들 덕에 지역사회의 자원이 잘 연결되었고, 덕분에 환자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왕진을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실제로 병원에 오지 못할 만큼 아픈데도 도움받을 방법을 몰라 앓고 있는 환자가 있음을 목격한 저는 지금도 어딘가에 이런 분들이 또 계시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차 의료 의사들이 지역사회에서 마음껏 환자를 바라보며 진료하고 뛰어다닐 수 있도록 해줄 배후세력이 지역사회에서, 그리고 제도적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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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민들레지역사회의료센터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이 지난 6월부터 프레시안에 “발로 뛰는 동네 의사, 야옹 선생의 지역사회 의료일지”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의료진과 환자가 함께 호흡하는 방문진료와 왕진, 가정간호의 현장이 생생하고 정감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프레시안(https://www.pressian.com)에 가시면 박 센터장의 더 많은 글을 볼 수 있어요. ‘좋아요’와 기사 공유, 댓글 달아주시면 힘이 쑥쑥 날 것입니다.

원본 출처 : 프레시안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82610043173225#0D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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