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정신병원은 지옥 같았어요. 지금 이곳이 천국이에요." >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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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들레 의료사협에서 왕진과 방문진료를 하며 동네를 누비는 야옹선생입니다. 저는 지난 3월부터 '행복울타리'라는 이름의 정신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의 주치의가 되어 주기적으로 방문 진료를 나가고 있습니다. 10명의 정신장애인들이 공동생활을 하고 계신 이곳은 조용하고 공기 맑은 산 아래 위치한 단독주택으로 여느 가정집과 같습니다. 적당한 크기의 마당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넓은 거실과 공동으로 쓰는 식당, 그리고 생활실로 사용하는 방들이 있습니다.

이곳의 정신장애인들은 대부분 조현병을 진단받은 분들입니다. 조현병 환자들을 많이 접하지 못했던 터라 저도 처음에는 살짝 걱정하며 갔었는데, 그곳에 계신 분들은 약물로 증상이 잘 조절되는 상태였습니다. 제가 이것저것 묻는 것에 대답도 잘 해주시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엇이냐며 질문을 하시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옥상 풍경이 좋다며 직접 구경도 시켜 주시고요. 장애인들 중 몇 분은 장애인 일자리를 통해 경제활동도 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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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상 풍경. ⓒ박지영

몇 차례 방문을 해서인지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정겹습니다. 처음엔 괜히 긴장해서 무섭게 느껴졌던 분들인데, 지금은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납니다. 거실에 눕거나 앉아계시던 분들이 '어이쿠, 원장님 오셨어요?' 하고 일어나시면 저도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잘 지내고 계셨어요?' 하고 인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얼굴을 들어 자세히 보니 다들 '확찐자'가 되어 있습니다. 서둘러 체중과 허리둘레를 측정하니 체중이 늘어난 분들이 절반 이상, 체중이 늘지 않았더라도 대부분이 허리둘레가 5cm 이상 늘어나 있습니다. 시설장님께 영문을 여쭈니 역시나 코로나19 여파로 외부 활동을 나가지 못해 생긴 일이었습니다. 소규모이긴 하지만 사회복지시설이고 환자들이 있는 곳이라 주무관청에서 외부 출입과 접촉을 자제하라는 지침이 내려왔고 만약 이를 어기고 접촉하여 시설 내에서 환자가 발생하면 책임을 묻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 시설장님 입장에서는 밖으로 나갈 수 가 없는 것이죠. 그래도 환자분들을 위해 실내 자전거를 설치하고 운동을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지만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시설에 계신 환자분들 포함 시설장님까지 모두 복부비만이 되었습니다. 시설장님께 외부인과 접촉하지 않는 걷기 운동은 괜찮으니 마스크를 쓰고 하시도록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에게 꾸준히 당뇨 관리를 받으시는 한 분께 이곳 생활이 어떠시냐고 여쭤보았습니다. 이분은 현재 연세가 일흔이신데, 젊은 시절 대부분을 정신병원에서 지내셨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갇혀 지내시다가 시설장님을 만나 이곳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정신병원은 지옥 같았어요, 내가 사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도 모르고 살았어요. 지금 이곳이 천국이에요."

그렇게 말씀하시며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편이 찡하게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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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영

이곳 시설장님은 원래 정신과 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정신장애인분들의 외부활동을 지원하거나 건강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분입니다. 그러다 병원에 입원했던 정신장애인들이 퇴원을 해도 막상 사회에 나와서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때문에 고민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가족들과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정신장애인들이 인간적인 환경에서 살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 공동생활가정은 실제로 이곳 식구들에게 든든한 울타리이자 집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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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 ⓒ박지영

장애인분들에게 건강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할지 계획을 세우시도록 권했습니다. 어떤 분은 건강검진을 받겠다고 하시고, 또 한 분은 담배를 끊어보겠다고 하십니다. 다른 분은 축구를 너무 하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속상해하시고요. 모두 자율적으로 건강 계획을 정하십니다. 몇몇 분은 이미 민들레 의료사협에서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장애인 건강반에도 참여하여 즐겁게 운동을 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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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건강반 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 ⓒ박지영

몇 년 전 국가인권위에서 실시한 정신요양원 환자들의 건강상태 실태 조사에 참여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담당했던 정신요양원의 스산한 분위기와 허름한 옷차림으로 배회하던 환자들의 모습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방송을 통해 통제되는 거대한 수용소 같던 요양원, 마치 유령 같은 환자들의 모습과 이곳 공동생활가정식구들의 모습이 대비가 됩니다.

신천연합병원장으로 고군분투 중이신 내과의사 백재중 선생님이 쓰신 <자유가 치료다>는 이탈리아 정신과 의사인 프랑코 바사리아가 어떻게 이탈리아의 모든 정신병원을 문 닫게 만들고 환자들을 지역사회로 다시 내보낼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바사리아의 이 혁명적인 실천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도 영향을 주어 지금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정신병원 입원 환자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물론 그만큼 지역사회에서도 정신질환을 앓는 분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요.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되면서 강제입원에 대한 기준이 엄격해졌지요. 실제로 1년 만에 강제입원 건수가 20% 가까이 줄었다고 하고요. 하지만 법시행 이후에도 급성기로 입원했던 환자들 대부분 장기입원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현병은 약물치료만 잘 받아도 안정적으로 관리가 가능하고, 급성기에도 단기간만 치료해도 증상이 완화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음에도 퇴원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퇴원 후 살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강제 입원 요건을 까다롭게 하고 퇴원을 쉽게 한다고 해서 입원했던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퇴원 후 살아갈 집과 직장,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약물치료도 지속 될 수 있고 지역공동체의 일원으로 안정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청도대남병원의 코로나19 확산에서도 보듯이 폐쇄된 정신병원은 감염병에도 취약합니다. 코로나 대응에 최고 선진국으로 불리는 우리나라가 정신장애인의 탈시설과 지역사회 복귀에 대한 대책이 아직 부족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이곳 행복울타리에서 가능성을 봅니다. 따뜻하고 자율적인 이곳이 정신장애인들에게는 그 어떤 병원보다 훌륭한 치료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 정신장애인들이 불필요한 사회적 입원을 반복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주치의로서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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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센터장(민들레의원 원장)은 생생하고 정감있는 필치로 왕진과 가정간호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프레시안(https://www.pressian.com)에 “발로 뛰는 동네 의사, 야옹 선생의 지역사회 의료일지”를 연재하고 있어요. ‘좋아요’와 기사 공유, 댓글 달아주시면 힘이 쑥쑥 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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