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이었다. 코로나 19사태와 긴 장마로 어정쩡하게 보내버린 지난 계절에 비하면, 또렷한 올가을의 풍경은 예상외의 축복이 아닐지. 푸른 카펫을 펼쳐놓은 듯 막힘없는 하늘과 톤 다운된 색깔의 나무들이 늦가을 정취를 만들어 가던 날, 까페 좋은이웃에서 윤자윤 조합원을 만났다.
“‘89년 신탄진’이 무슨 뜻인가요?”
민들레 건강반들의 이름은 저마다 특색있는 것이 특색인데, 윤자윤 조합원이 활동하고 있는 건강반인 ‘89년 신탄진’ 역시 재미난 이름 같았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느낌?
“1989년도에 신탄진이 대전광역시에 편입되었어요. 그 해를 기념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어요.”
윤 조합원은 웃으며 말해주었다. 신탄진은 윤 조합원이 태어나서 자라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곳이다. 고향과 같은 이 동네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이웃 5~6명이 모여 작년부터 건강반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건강반 구성원들이 모두 바쁘게 바깥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이다 보니, 제때 밥을 챙겨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영양과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 염려되었다. 그러다가 친하게 지내던 이웃이 식중독으로 입원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좋은 먹을거리에 대한 필요성을 심각하게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건강식, 다이어트식 레시피를 만들어서 카톡 모임방에 공유하고요, 그 레시피로 각자 집에서 요리를 해서 먹으면서 소감을 나누어요. 일이 바빠서 자주 모이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쉬웠는데, 좋은 먹을거리를 주제로 교류할 수 있어 좋습니다.”
각자 일터에서 바쁘게 살던 ‘89년 신탄진’ 건강반 멤버들은 코로나사태 이전에도 비대면 활동이 자연스러웠다.
윤 조합원은 어떤 계기로 민들레를 만났을까? 한밭레츠에서 수공예 강사로 활동하다 민들레 조합원이 되었고, 기부금을 납부하는 스스로조합비 조합원에도 가입하였다고 한다.
“민들레는 협동조합이고, 과잉진료를 안하고, 지역사회에 기여를 하는 곳이라고 들었어요. 처음엔 생소했는데, 마을 활동가 교육을 듣고 있었던 때라서 그랬는지 이해가 잘 되더군요.
“그래도, 후원금까지 내기로 결심하기엔 쉽지 않았을 텐데요?”
“매달 1만원 씩 내는 것, 큰돈도 아니고.저는 기부금 내는 조합원이 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적은 돈으로도 민들레가 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끼어서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내 건강에 대해 챙겨주고 걱정해주는 곳이 있어 좋고요. 특히 아이들까지 가족주치의 상담을 할 수 있는 병원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그녀가 마을 활동을 열심히 하는 이유도 아이들이 동네를 떠나지 않고 계속 살았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라고 한다. 신탄진이 대전의 외곽지역이다 보니, 문화시설이 부족하고 교육격차가 있어 사람들이 점차 떠나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 대신 번화한 동네보다 주민들끼리 뭉치고 단결하는 힘은 강하다. 몇 해 전에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신탄진의 역사를 오롯이 담은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난다면, 우리 애들도 저처럼 고향에서 뿌리내리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내년의 건강목표를 다이어트로 잡고 있다는 윤 조합원은 인터뷰 말미에 민들레에 매우 큰 요청 한 가지를 했다. 지금 아이들이 다 자라나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자랄 때도 민들레가 있었으면 한다는 바램이었다.
“우리 세대만 민들레를 누리고 가기엔 너무 아쉽잖아요. 다음 세대도 누릴 수 있도록, 민들레를 이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주시기를 부탁드려요.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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