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시각장애인복지관] 에세이 > 소식지

· 2005.05~ 복지관 이용
· SNS서포터즈단 임원활동

2년 전 설날 즈음이다. 큰 시누이 가족과 베트남 여행을 열흘 간 하고 대한항공에 몸을 실었다.

인천 공항에 들어서 핸드폰을 작동시키니 많은 메세지 중에 동창회라는 문구가 언뜻 귀에 들려온다. 동창회란 말에 나와는 무관하다는 생각으로 지나쳐 버린다.
피곤하고도 무거운 몸과 마음을 내 집 안방에 내려놓았을 때에 다시 그 동창회란 말이 떠오른다.

핸드폰 문자를 상세히 들여다보니 정말 동창회를 한단다. 졸업한 지 50년 만의 동창회를 한단 말이지? 그렇지만 눈의 빛을 잃어 혼자서는 갈 수도 없고, 이 모양으로 어떻게 친구들을 만날 수가 있겠어! 아니지, 내가 어째서! 눈 못 보는 것은 죄가 아니야!

막내 여동생에게 전화 걸어 나의 심정을 토해 놓는다. 며칠 후, 여동생이 충언이랍시고 걱정스런 말로 행동지침을 전해 준다.

한 마디로 그런 곳엔 가지 말란다. 통화 중엔 모든게 동감이 되어 모임 가는 것을 포기하기로 한다.

설거지를 하며 곰곰히 생각을 하니 은근히 화가 난다. 눈 못 보게 된 것이 자기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일까? 아니야, 속상해서일 거야. 다른 한 편에서는, 힘과 용기를 주진 못할망정 내가 가는 길을 가로막아?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 내가 옛날의 전근자가 아니지! 지금 시각 장애란 핸디캡을 갖고 살지만 나는 뭐든지 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어!

결정을 하게 되었을 땐, 공부에서 라이벌이기도 했던 순옥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순옥이 말이 나에게 통화하기가 망설여졌다며 참석한다니 정말 고맙고 빨리 보고 싶다 한다. 한동네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과도 동창회 가기로 합의를 한다.

기차를 이용하여 도우미 손잡고 대전 커다란 어느 식당에 들어서니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학교 교실을 방불케 한다. 가장 친했던 아이들과 손을 잡기도 하고 얼싸 안기도 하며 회포를 푼다. 학교 다닐 때 존재감이 있었던지, 아니면 실명한 내가 용감하게 나타난 게 신기했던지 남자아이들까지도 손을 내어민다. 나를 만난 아이들이 한가지로 하는 말이 어쩜 얼굴이 그렇게 밝을 수 있냐고 했다.

내가 이번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나에 대해 어찌 생각하였을까.

학교 다닐 때 말도 별로 없고, 공부는 조금 잘했던 근자라는 큰아이, 지금은 울산 어느 바닷가에서 어두움에 갇혀 살고 있다는 것으로 기억 되고 있겠지!

하루 종일 먹고 웃고 떠들며 지낸 그 날은 우리 모두가 국민 학교 어린이였다. 다시 그들과 만나 속리산 자락에 있는 그 법주 국민학교 어린이가 되어서 고무줄놀이도 하고 땅따먹기도 하면서 뛰어 놀고 싶다.

· 2003.06~ 복지관 이용
· SNS서포터즈단 임원활동

나는 유별난 여자애였다. 유별나다 못해서 무모한 여자애였다. 이 남다름이 인간관계에서는 파국을 불러왔을지 몰라도 스스로의 길은 맞게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내가 '핸드팬'이라는 악기를 만나고 나서, 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 알게 된 사실이다.

핸드팬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페이스북에 SND 아카데미를 운영하시는 지인 분을 통해서였다. 나의 스승이자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었던 멘토가 되어 주신 에쿠스 선생님이다.

에쿠스 선생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페이스북 친구를 맺어 쭉 바라만 보고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선생님이 핸드팬 아카데미를 오픈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2020년 나에게는 핸드팬의 소리가 전혀 와 닿지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2021년 봄이 찾아오기 전 쯤에 에쿠스 선생님의 연주를 듣게 되었다. '그녀'라는 자작곡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소리의 울림에 반해버렸다. 심장이 격하게 그 소리에 반응했다. 그 느낌은 한 달간 나를 매료시켰고 악기를 배워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강력했다.

'핸드팬'이라는 악기는 손가락으로 쳐서 소리를 낸다. 전체적으로 둥그런 형태이고, 8개에서 13개까지 다양한 타원형 홈이 볼록 튀어나온 '딩'이라고 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배열되어 있다. 소리는 몽환적이며 가야금 같다는 사람, 피아노 같다는 사람 등 다양하다. 체명 악기이며 철판으로 만들어진 금속 악기이다.

외국에는 핸드팬을 만드는 장인이 존재하며 가격은 300만원이 훌쩍 뛰어넘는다고 한다. 2월의 어느 날 용기를 내어 SND에 전화해서 들었던 내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SND에서 제시하는 200만원이라는 가격은 합리적인 것 같았지만 대학생 신분에서는 꿈꿀 수 없는 가격이었다. 그러던 차에 중고나라를 찾게 되었고, 놀랍게도 SND 핸드팬을 팔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핸드팬 하드케이스까지 합해서 100만원에 말이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운명적인 직감이 왔다. 저건, 바로 나를 위한 악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