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서의 유래 최근에 백서와 흑서 논쟁이 흥미롭게 전개된 적이 있다. 상식적으로 어떤 뜻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쓰는지,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쓰는지의 문제로 짐작할 수도 있고, 단재 신채호의 역사관을 빌린다면 아(我)의 입장에서 쓰느냐 비아(非我)의 입장에서 쓰느냐의 문제로 짐작할 수도 있겠다. 백서의 유래는 17세기 영국정부에서 외교정책 보고서는 흰 표지로, 의회 보고서는 푸른 표지를 붙인데서 시작되었다 하고, 흔히 정부가 국민에게 알리는 시정내용을 엮은 책을 백서라고 한다. 그것은 왕조실록처럼 역사 집필의 과정이기도 하다. 역사는 공정하고 사실적이며 비판적인 입장에서 양심에 어긋나지 않도록 쓰는 것이 원칙이다. 역사의 바른 기록은 해당 사건과 관련 있는 위정자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다음에 이루어진다. 위정자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쓰고 싶은 대로만 쓰는 백서는 진정한 역사가 아니다. 시민에게 보여주는 대로만 보시고, 말하는 대로만 들으시고, 기록한 대로만 읽으시며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는 뜻으로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가 발생되기 때문이다. 권력을 쥔 자들의 주장이 불합리해도 당대에는 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오랫동안 속일 수가 없음을 다 알지만, 다 지키지는 않는 이야기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중요한 역사 가운데 하나인 삼국사기는 김부식이 사대주의적 역사관에 입각하여 썼음을 단재 신채호는 통렬히 비판했고, 이병도의 역사교과서가 부정되고 나서 통일된 사관에 의한 국사(國史)를 제대로 정립시키지 못하는 백가쟁명(百家爭鳴)시대의 불행이 초래되고 있다. 파사현정 ;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냄 그것을 비판하는 현대인들은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이 시대를 기록할까? 심각한 일은 선출직 공직자들이 전임자가 시민과 함께 결정해서 추진하던 소중한 사업들을 후임자로서 정성스럽게 인수받아서 계속 추진하여 완결지어야 함에도 매몰시키기 일쑤이다. 한두 가지 예를 들어보면 과거 어느 시장님께서 ‘대전사랑운동’에 역점을 두고 추진한 바가 있다. 이것은 대전시민의 입장에서는 불변의 사업인데 슬며시 퇴색시키고 말았다. 대전의 지하철 2호선 건설방식을 두고도 엎치락뒤치락 했는데 먼 훗날 어떻게 평가받을지 모를 일이다. 대덕문화센터는 조성 당시 대덕단지 입주과학자들의 문화적 향유를 위해서 주민들의 토지를 수용하여 공공용지로 취득하고 정부예산을 들여 건립했는데 어찌 돼가고 있는지 궁굼하다. 혜안을 가지고 계룡로를 넓게 설계한 공무원은 당대에 지탄을 받았고, 원동초등학교 자리에 동구청이 들어설 때 반을 잘라서 팔아버리게 한 공무원은 당대에 표창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홍명상가를 만들게 했던 권력자들이 얼마나 엄청난 손해를 입혔는지 지워지지 않도록 기록해둬야 한다. 백서와 흑서가 뒤바뀔 사례들이 아닐까. 세세히 말하자면 오늘 단체장들이나 의원들이 하는 일들은 훗날에 모두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시정백서나 의정보고서는 추진한 일만 홍보한다. 그러나 정작 추진하지 못한 일이나, 잘못한 일은 보이지 않는 곳에 따로 기록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사자성어로 남기며 글을 맺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