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봉국종 할아버지’이다.
고향은 이북. 6.25가 터졌을 때 어린나이에 물살 타듯 떠밀려 피난을 오게 됐다. 먹고 살기 바빠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겨우 면허를 따고 냉동탑차 운영만 20년 했다. 한 푼, 두 푼 모은 자금으로 공장을 차려 어렵사리 가족까지 이루었으나, 사기를 당해 한 순간에 가족과 공장을 잃었다고 했다. 가족들은 현재 연락조차 하지 않는 상태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처음 피난 왔을 때 처럼 가진 것 하나 없이, 공장이 세워져 있던 꽃게 부두 그 자리 컨테이너 속에서 살고 있다. 허리가 아파서 거동이 불편하시고 몸이 좋지 않아 끼니 해결도 어렵던 차, 각 사회단체의 지원을 받아 수술도 하시게 되고 부식과 쌀, 김치(김장철)등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매 끼니 먹을 반찬이 부족한 상황이다. 연세가 있어 건강이 제대로 회복되진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맑은 날의 하늘처럼 환하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다. 가끔씩 만나 뵐 때마다 그는 어린애처럼 반가워하며 좋아하신다. 늘 사람을 그리워하는 봉죽종 할아버지는 손을 내밀어주는 이웃 때문에 그래도 살아가는 낙이 있다고 하시며 해맑게 웃었다. 봉국종 할아버지처럼 이웃의 손길이 필요한 어르신들은 늘 우리 주변에 있으시다. 오늘하루, 관심을 갖고 어려운 이웃으로 다가 간다면 더 살기좋은 중구가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