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시사랑채노인복지관] 우리고장 地名순례 >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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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동의 한 축을 이루는 오매기 마을은 도심 속의 공원 같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전원마을이다. 여성회관을 지나 무궁화선경아파트 아래 사거리에서 북쪽 의왕문화원 가는 길로 접어들면 모락산 자락을 살포시 안으며 자리한 곳이 오매기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느끼는 것은 도시가 인간의 작품이라면 자연은 신의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신의 세계는 신선하고 자연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도시와 인접하여 있으면서도 논과 밭이 있고, 화훼단지와 실개천이 흐르고 오전저수지가 있어 자연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오매기 마을이라는 지명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 용머리, 목배미, 사나골, 가운데말, 뒷골, 백운동이라는 작은 마을이 모여 구성된 마을이다.
세월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노라면 조선시대에는 오막동(五幕洞) 또는 오마동(五馬洞)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런 지명과 오매기에 대해서는 좀 더 설명을 요구한다.

오매기라는 유래에 대해서 두 가지 구전이 전해 내려오는데 먼저 류씨, 진씨, 노씨, 마씨, 문씨 등 5개의 성씨가 각각 막(幕)을 지었고, 전부 5막이라고 해서 여기서 오매기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이 마을의 산세가 다섯 마리의 말이 기수를 태우고 달리는 형상이라고 해서 오마동(五馬洞)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오매기를 지나는 길은 삼남길 중에서 으뜸 풍경의 길이었다고 한다. 삼남길이란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지방으로 가는 10대 대로 중에서 가장 긴 우리나라 대표 도보길로 충청, 경상, 전라도로 가는 한반도의 동맥과 같은 길이었다. 지금도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를 느끼고 생각하게 하게 하는데 그 당시는 얼마나 아름다운 풍광이었으면 삼남길의 으뜸이라고 했을까?
능히 예측이 가능하다. 청운의 꿈을 안고 이 길을 지나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의 발길과 낙방거사의 처량함을 안고 이 길을 지나 고향으로 가던 선비의 무거운 발길은 그 얼마이었으며, 삶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봇짐을 지고 이 길을 넘나들던 행상들의 삶의 족적은 또 얼마였을까?

6월의 해맑은 햇살이 곱게 내린 가운데 녹색 초목의 잎 사이를 빠져 나가는 작은 바람결에 흔들리는 잎들이 숲 속에 요정들의 속삭임 같아 귀 기울이게 하는 오매기 마을은 지금 현대화의 삽자루와 자연보존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 이천우 시니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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