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시사랑채노인복지관] 우리고장 문화유적 >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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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을 최초로 우리나라에 전래한 안향의 신위를 모신 사당은 의왕시 월암동 부곡체육공원에서 멀지 않은 남쪽 건널목 좌측에 있다.

신위가 처음 모셔졌던 곳은 황해도 연백군 송전리였다. 1950년 한국전쟁의 포화가 지축을 울리고 살아남는 것이 정의가 되는 전쟁의 혼돈 속에서 안향의 혼령을 모신 신위도 무거운 피난길에 함께하여 마포구 창전동에 옮겨졌다가, 현재의 자리에 모셔진 것은 1975년의 일이다.

약 1,500평의 묘당 입구에 ‘안자묘’라는 비석이 서 있으며, 소슬 대문을 들어서면 팔각지붕에 3칸의 한옥이 붉은 단청을 한 채 긴 세월의 시공을 초월하여 당시의 명성을 내세우듯 자리하고 있다. 묘당의 중앙 처마 아래에는 ‘안자묘’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 현판은 공자의 후손인 공덕성의 필체라 하니 역사의 깊이와 당시 묘당의 주인공에 명성과 업적을 능히 헤아려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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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향의 호는 회헌, 시호는 문성공으로 흥주 사람이다. 고려 유학 제거가 되어 중국의 연경에 갔다가 처음으로 ‘주자전서’를 보고 베껴 썼으며, 공자와 주자의 화상을 그려 가지고 돌아와 처음으로 주자학을 연구하기에 이른다.

주자학이란 송나라 주희의 사상으로 공자의 학문에서 인간의 심성과 우주의 원리 문제를 철학적으로 규명하려는 신유학으로, 대체적으로 체제를 유지하는 정체적인 사상이다. 쉽게 말해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고정시키려고 하는 것이 주자학의 핵심이다.
안향은 신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유학 진흥을 위하여, 정6품의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은 은 1돈씩, 7품 이하는 포를 내도록하여 이를 양현고에 귀속 시키게 하고, 그 이식으로 학교를 운영하게 하는 한편 박사 김문정 등을 중국에 보내서 공자와 그 제자들을 기리고 제기, 악기, 경전 등을 구해 오게 하는 등 고려 말에 유학 진흥에 큰 공을 남겼다. 그가 죽은 후 12년 되는 충숙왕 5년인 1318년에 왕이 그의 초상을 그리게 하였으니, 그의 초상은 현재 국보 제111호로 경상북도 영주의 소수서원에 보존되어 있다.
(초상 사진 서원 보존 분)


- 이천우 시니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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