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시각장애인복지관] 박정순의 살아온 이야기 나도한때 날린여자 >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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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순의 살아온 이야기
나도한때 날린여자


IMF가 오기 전엔 난 장사를 했고 남편은 나름 회사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땐 집에 도둑이 와도 모를 정도로 일을 많이 했어요. 시급이 적으니 아침에 별 보고 출근해 달 보고 퇴근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IMF가 오니 거짓말처럼 장사도 안되고 덩달아 망막색소변성증으로 눈도 보이지 않아 혼자 괴로워하며 방황도 많이 했어요. 살다가 내가 정말 눈이 안 보일 줄이야 꿈에도 몰랐답니다. 그런 세월이.. 하루하루가 무서웠어요. 그러나 어쩌겠어요. 받아들일 수밖에....
그렇게 살면서 지인의 추천으로 동사무소에서 장애인등록도 하게 되고 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를 알게 되어 등록도 하니 라면 1박스와 사랑의 소리란 글이 새겨진 라디오를 갖다줬어요. 연합회에 처음 나오니 나이가 젊은데 눈이 보이지 않느냐고 누가 물어봅니다. 집에서는 나 혼자만 그런 줄 알았는데 여기에 나와보니 너무 많았어요. 나와 같은 사람들이.... 또 그렇게 살다 보니 기가 막힌 일도 참 많았어요. 한번은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김밥과 국을 주며 수저는 주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먹으라고 수저를 주지 않아요?”라고 했더니 주인이 “안 보이는 사람이 잘못 집으면 흘리고 그러니 김밥은 손으로 먹고 국은 그릇째 들고 마시세요” 랍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김밥은커녕 목이 메고 멀어 버린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어요. 정말 원통해서 소리가 들리는 차도로 확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슬퍼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아요.
살다 보니 또 웃지 못할 고마운 일도 많았답니다. 어떤 날은 행사에 참여하고 집으로 가는데 약시가 앞장서 굴비 엮듯 손에 손을 잡고 걷다가 구덩이에 빠져 고생하기도 하고 한참을 걸어 차 소리가 들려 도로가 가까워지나 보다 생각해 조금만 더 힘내서 걷자며 서로를 위안했어요. 마치 6.25 피난 가는 그림이 나도 모르게 떠올랐어요. 어쨌거나 집에는 가야 하는데 택시를 불러도 알려줄 사람이 없으니 막막했어요. 눈이 보이지 않아 도로에 앉고 서기를 반복하다 밤도 늦어 방법이 없어 맹인들이 의견을 모아 119에 전화를 하기로 했답니다.
불이 나거나 응급 환자가 아니라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 ‘삐용삐용’하며 오는 소리가 들려 내심 얼마나 반가운지... 돌아가신 아버지가 돌아온 것처럼 기쁘고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어요. 이제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에 다리에 힘이 쭉 풀려버렸어요. 차를 타는데 구급차라 소독 냄새도 났고 한 사람 한 사람 집까지 친절히 데려다주는 119 대원들이 정말 고마웠고 미안했고 또 듬직했답니다. 막막했던 그 시절에는 그런 날도 있었네요.

2020년 7월 박정순의 살아온 이야기 2부가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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