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시사랑채노인복지관] 한국영화가 101년만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세계 정상에 섰다 >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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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영화에서 봉준호 감독 '기생충' 까지 100년사
한국영화가 101년만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세계 정상에 섰다


한국영화가 처음으로 스크린에 올려진 것은 1919년 김도산의 작품으로 ‘의리적 구토’였다. 그러나 단성사에서 1919년 10월 27일에 스크린에 올려진 ‘의리적 구토’는 완전한 영화가 아니라 신파연극을 하는 중에 스크린을 내려서 순간순간마다 자막 상영을 하고 다시 신파연극을 하는 형식이어서 완전한 영화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러나 영화계에서는 이 날을 영화의 날로 기념한다. 비록 무성영화이지만 처음으로 영화다운 형태를 지닌 영화는 4년의 세월이 더 지난 1923년 ‘月下의 맹세’ 이다. 윤백남 감독의 작품인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달 아래서 사랑의 맹세를 하는 스토리이다. 무성영화이지만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은 영화는 다시 3년 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이다. 영화와는 전혀 무관하지만 그 해 우리나라는 조선왕조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승하한 해이기도 하다.

시간과 세월은 영화의 스토리 같은 많은 역사를 잉태한다. 우리 영화사 100년도 이 역사의 진실을 건너 뛰어 넘지는 못하였다. 그 중 하나가 영화배우 최은희씨 남북사건이다. 영화광인 북한의 김정일은 홍콩에서 당대의 명배우 최은희씨를 납치하였다. 부인 최은희씨를 찾아 나선 남편 신상옥 감독과 평양에서 영화를 만들다가 유럽에서 촬영 중 탈북하여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세계 극장의 스크린을 장악하므로 한국영화 100년사에 찬란한 금자탑을 쌓았다. 칸에 이어서 미국의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분을 휩쓸었다. 아카데미란 학회라는 어원으로 아카데미상은 1926년 미국의 영화사대표가 제작자, 감독, 배우를 모아서 만든 세계에서 불란서의 칸, 이탈리아 베니스, 독일 베를린, 러시아의 모스크바 영화제와 더불어 세계 정상에 자리하는 영화제이다.



- 이천우 시니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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