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의회] 특별기고 : 법과 범죄자, 그리고... 피해자를 마주한 정치인의 눈과 귀의 방향성 >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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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만든다는 것, 법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권력이다.
“범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즉흥적으로 응답하지만, 그 답은 정답은 아니다. 과연 범죄가 먼저였던가, 법이 먼저였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속에서 국가에 의한 처벌은 법을 근간으로 하기에, 누가 범죄자이며, 어떤 처벌을 얼마나 받는지는 법에 따른다. 때문에 법은 엄청난 힘을 갖는다. 시민들의 사고의 틀을 형성하고, 그 나라의 치안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법을 제정할 수 있는 정치인의 말, “시민의 눈과 귀가 되겠다”라는 흔하디 흔하게 익숙한 이 말은 매우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기도 하고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어떤 시민의 눈과 귀가 될 것인가가 중요할 뿐만 아니라, 어디를 보며 무엇을 듣는지에 따라 법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회적 주류계층이 평범한 시민의 입장을 취하기 위해 자세를 낮춰야 함과, 소외되어 보이지 않는 이들을 돌봐야 하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돋보기와 확성기가 탑재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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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여성을 이야기할 때는 두 가지 큰 맥락이 짚힌다. 첫째,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법’ 안에서 여성은 약자였다. 여성은 법을 제정할 때도 개정할 때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둘째, 범죄자를 처벌하는 현재의 형사 사법 시스템 속의 피해자는 약자이다. 국가가 개인 간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는 형사 사법 제도를 자처하며 범죄자를 처벌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로 인해 범죄 해결 단계에 피해자는 사라지고 가해자와 형사사법기관만이 남았다. 피해자의 목소리는 사라진 것이다.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범죄 사건은 여성에게 비난을 가하면서 숨게 하였고, 피해자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았다. 최악의 약자와 약자의 조합인 것이다. 그러니 여성이 피해자가 된 사건에 대해서 우리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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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중인 n번방. 사람들은 조주빈이 궁금하다. 그리고 n번방의 26만 명을 궁금해 한다. 궁금한 내용은 그가 어떻게 자랐냐와 그의 악랄한 범행 수법이다. 가끔씩 누군가는 그런 범죄자와 n번방의 사람들을 일상생활에서 구분해 내는 방법을 묻기도 한다. 그들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일상 속에 녹아 있다. 인구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2020년 2월 기준 남성인구가 2,586만 명이고, n번방의 그들이 26만 명이니, 대략 100명당 1명이 그들인 셈이니 생각보다 그들이 가까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멀리서 찾으려 하고, 그들을 감시하려 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에 대하여는 묻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가해자 처벌’에만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가해자에게 “왜 그랬느냐”, “반성하는가?”라는 질문은 적절하지 않다. 그에게 마이크를 주어서는 안 된다. 사건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피해자들이 발언권을 얻어야 하고, 얼마나 아픈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말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 과정을 살펴야 할 것이다. 집단 린치 속에서 윤리를 져 버린 그들은 용기를 냈던 피해자와 관망할 수 없었던 제보자에 의해 드러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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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들이 집단 전염병에 대처하는 방식은 인간의 집단생활 대처 방식을 반성하게 만든다. 개미의 생명을 위협하는 곰팡이가 확산될 때, 가장 건강한 개미들이 감염된 개미에게 와서 곰팡이 포자를 제거하고 번식을 막아 낸다. 감염된 개미를 방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물론 건강한 개미에게도 곰팡이 포자가 감염되는데, 건강한 면역체계가 포자를 죽여 집단 면역성을 강화시켜 나간다. 약한 개미를 방치하지 않고 강한 면역체계가 공격을 막아 주는 모습은 사회 내 취약 계층에 대한 공격을 사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모범 답안을 제시한다. 피해자를 방치하거나 탓하는 것이 아닌 공격에 대한 집단면역성을 키워 나가는 방식이 중요한 것이다. 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처, 개미만큼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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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학의 일상활동이론(routine activity theory)은 동기화된 범죄자, 취약한 범죄자, 그리고 보호자의 부재라는 세 박자가 맞아떨어져야 범죄가 발생한다고 본다. 즉, 어느 하나만이 범죄의 요인이 아닌 것이다. n번방과 린치 집단들은 분명 나쁘게 동기화된 범죄자이고, 사회가 풀어 나가야 할 숙제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취약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보호자의 역할을 자처하는 우리라는 사회적 보호자가 더 많아져야 할 것이고 강건해져야 한다.
이러한 범죄에 대한 당위와 바람은 법의 힘을 통해 더욱 완벽해질 수 있다.
법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은 여성 혹은 피해자, 그리고 더 취약한 여성 피해자를 봐 주기를 바란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짓기가 아닌, 우리의 건강한 면역성을 약자의 회복을 위해 쏟게 만드는 사회적 면역성을 키워 나가는 법의 방향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역할의 핵심이 정치인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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